‘폐열의 이용’에 대한 정보공개청구

내가 하는 일은 스팀을 재활용하는 시스템을 설계하는 일이다. 일종의 ‘폐열’을 이용하는 것이다.

일하다가, ‘도대체 우리나라 법에서 ‘폐열’을 어떻게 다루고 있지?’가 궁금해졌다. 명색이 변호사인데, 일과 관련된 법조항들은 어떤 것인지는 알고 있는 게 기본이라고 생각했다.

그래서 ‘법령정보’사이트를 통해서 법령에서 ‘폐열’을 검색해 보았다. 검색된 것 중 제일 중요한 조항은 에너지이용 합리화법 조항이었다. 다음과 같다.

에너지이용 합리화법 [시행 2016.8.12.] [법률 제13805호, 2016.1.19., 타법개정]

제36조(폐열의 이용)

① 에너지사용자는 사업장 안에서 발생하는 폐열을 이용하기 위하여 노력하여야 하며, 사업장 안에서 이용하지 아니하는 폐열을 타인이 사업장 밖에서 이용하기 위하여 공급받으려는 경우에는 이에 적극 협조하여야 한다.

② 산업통상자원부장관은 폐열의 이용을 촉진하기 위하여 필요하다고 인정하면 폐열을 발생시키는 에너지사용자에게 폐열의 공동이용 또는 타인에 대한 공급 등을 권고할 수 있다. 다만, 폐열의 공동이용 또는 타인에 대한 공급 등에 관하여 당사자 간에 협의가 이루어지지 아니하거나 협의를 할 수 없는 경우에는 조정을 할 수 있다.  <개정 2008.2.29., 2013.3.23.>

이 조항에서 말하는 ‘권고’와 ‘조정’이 실제로 이용된 사례가 있는지 궁금해졌다. 그래서, 정보공개청구를 이용해 보기로 하였다.

5. 15 대한민국정보공개포털을 이용하여, 산업자원부를 상대로 다음 항목 등에 대해 정보공개청구를 하였다.

  • 1995. 7. 6. ‘폐열의 이용 권고’ 조항이 시행된 이래로 현재까지 권고가 이루어진 경우 그 리스트와 각각의 구체적인 내용
  • 2002. 9. 6 ‘폐열의 이용 조정’ 조항이 시행된 이래로 현재까지 조정이 이루어진 경우 그 리스트와 각각의 구체적인 내용

5. 24 즉시공개 결정이 떨어졌고, 즉시공개서를 이메일과 정보공개포털에서 확인할 수 있었다.

중요한 내용이니 그대로 옮기면,

에너지이용합리화법 제36조제2항에 따라 산업부장관이 폐열을 발생하는 사용자에 대하여 폐열의 공동이용 혹은 제삼자에 대한 폐열공급을 권고하거나 조정신청을 받은 내역은 없는 것으로 확인하였습니다.

즉, 폐열의 이용 ‘권고’나 ‘조정’이 이루어진 사례가 놀랍게도 지난 20여년 동안 단 한 건도 없었다.

재활용을 하면 에너지를 많이 절약하고 효율을 높일 수 있는 ‘폐열’을 실제로 잘 이용하고 있지 않다고 볼 수 있다. ‘이용하여야 한다’가 아니라, ‘이용할 수 있다’라는 데에서 별 의지가 없음을 알 수 있고, 또 ‘권고’, ‘조정’ 사례가 없다는 데 대해서 관심이 크지 않다는 것도 알 수 있다.

진짜로 폐열의 이용에 관심이 있다면, 이 조항은 ‘이용하여야 한다’로 바꾸고, ‘권고’나 ‘조정’ 조항은 삭제하여야 한다. ‘이용하여야 한다’라고 강제성을 두게 되면, ‘권고’ 또는 ‘조정’없이도 폐열을 스스로 찾아서 잘 이용할 수 있다. 그리고, 폐열은 스스로 찾아서 스스로 이용하게 하는 것이 우선이지, 남이 자신의 폐열을 이용하도록 허락하거나, 자신이 남의 폐열을 이용할 수 있도록 허락하게 하는 것은 차후 문제이다.

그런데, 궁금한 게 생겼다. 이미 에너지 이용 합리화법에 ‘폐열’에 관한 조항이 있고, 조정/권고 조항이 있는데, 이런 것을 이용하기는 커녕, 새로운 ‘열네트워크 구축?’ 이런 곳에 일을 벌이려는 이유는 뭘까? 정책이나 법령이 이미 있는데도 불구하고, 새로운 것을 굳이 해야겠다면, 과거 정책을 중단하고 새로운 정책을 하겠다고 분명히 밝히고 과거 정책의 문제점은 무엇이었고, 그것을 새로운 정책에서 어떻게 개선하겠다는 내용이 반드시 밝혀져야 한다고 본다. 법령도 마찬가지이다. 이미 시행되고 있는 법령이 역할을 못하고 있다면, 그 조항을 개정하거나 폐지하거나 하는 절차를 먼저 거쳐야지, 무조건 새로운 법령, 특별법 들을 또 만들고 또 만들고 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